3.1운동 100주년기념 동북 역사 탐방(2편)
상태바
3.1운동 100주년기념 동북 역사 탐방(2편)
  • 뉴스투데이24
  • 승인 2019.05.28 1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신숙의 답사기'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3.1운동 100주년기념 동북 역사 탐방 호텔에서 답사기를 정리중인 필자
3.1운동 100주년기념 동북 역사 탐방 호텔에서 답사기를 정리중인 필자

하남문화원 지난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3.1운동 100주년기념 동북 역사탐방길에 올랐다.

이번 역사탐방길에 동행한 강신숙 하남문화원 이사의 답사기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강신숙씨는 하남문화원 향토사 연구소 회원 겸 하남문화원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편집자 주>

4월 24일 수요일 맑음(하얼빈-목단강)

아침 식사 전에 호텔주변을 구경하려고 나왔더니 음식냄새가 많이 나는 골목에는 바람이 아주 세게 불고 추워서 조금만 보고 그냥 들어왔다. 8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한 시간을 시외로 나가 일본의 악날함을 보여주는 731세균연구부대에 도착했다.

입구에 커다란 돌에 ‘침화일군제731부대죄정진려관’이란 글씨가 앞에 새겨져있고 황량한 벌판에 검은 건물이 기다랗게 서있다. 구관은 헐어지고 신관을 새로 지었다.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의 참전으로 731부대가 강탈당할 것을 우려해 모든 부대시설을 파괴하고 철수를 명했다.

731부대  앞
731부대 앞

 

만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공병대가 긴급히 투입돼 9일부터 4일 동안 본부동을 제외한 주요 건물들을 모두 폭파했으며 당시 생존해 있던 150여명의 마루타들 까지 모두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관의 땅속에서 일제가 철수하면서 묻어둔 도자기로 만든 세균폭탄이 나와서 이곳은 가장 어둡고 방값이 가장 낮은 동네라고 한다.

부대 내부의 벽
부대 내부의 벽

 

구관에서는 3만 명이 죽었고 들어가면 소름이 끼친다. “구관에서 신관으로 옮겨와 전시하고 있는 쇳덩이 들은 위험하니 만지지 말자”. 광장에는 학생들이 관람을 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안에는 물, 라이터, 향수의 반입금지이고 사진은 후래쉬 사용이 안 된다.

731부대는 1936년 일제의 만주 침공 때 설립됐고 1945년까지 생체 해부 실험과 냉동 실험 등 치명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하며 생물, 화학 무기 개발에 주력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 벽에 커다랗게 ‘반인류폭행, 비인도적 잔학행위’라는 글이 벽 전체에 있다. 중국지도안에 세균부대가 있던 위치가 표시되어있고, 생체실험을 한 사람들의 신상기록이 있다. 연구하는 모습, 각종도구, 건물, 사람에게 실험하는 모습, 죽이는 모습, 군인들 의류, 물품, 전화기, 기록한 것, 증언동영상, 생체실험도, 마루타를 운반하는 차(이차만 출입이 가능),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 여러 가지 모양의 세균폭탄들이 전시되어있다.

일제가 미국에 투항하며 생체 실험한 연구 자료를 주는 조건으로 전범들을 모두 풀어주기로 하여 그들은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연구자들은 정신병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였는데 10년 후에 가책으로 양심고백을 하므로 중국에 알려지게 되어 1956년에 다시 재판을 했던 재판장도 재현해 놓았다. 생체실험대상자 중 중국인이 80%, 독립투사가 10%. 포로가 10%인데, 일본의 생각은 일본인은 일등국민이고, 조선인은 이등국민, 중국인은 3등국민이며 마루타이며 통나무와 똑같다고 생각을 하였다.

동상 실험하는 모습
동상 실험하는 모습

 


실험에 동원된 마루타는 남녀노소를 불문했고 심지어 임산부까지 동원됐다.‘전염병 예방’등의 임무를 띤 부대로 위장하고 야전 정수기를 개발하기도 했는데 1940년 이후 해마다 600여명의 수용자들이 생체실험에 동원돼 731부대의 생체 실험 희생자가 최소 3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러모양의 도자기폭탄
여러모양의 도자기폭탄

 

모든 실험과 해부는 모두 살아있는 상태에서 마취 없이 이뤄졌는데 이는 실험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일본의 악랄하고 비인간적인 만행에 ‘인간도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를 반복하면서 다시 할빈 시내로 돌아왔다.

시내로 오며 안중근의사가 체포 후 며칠간 갇혀 지냈던 화원 소학교자리(가장 번화가이며 옛 일본 영사관자리)와 건물 맨 위에 그 건물이 지어진 연대가 써있는 것을 보았다. 안의사가 저격 위치를 살펴보던 재흥교, 양식창고로 사용 중이어서 남아있는 제2 성당을 차창 밖으로 내다보고 조린공원으로 갔다. 시내를 지나면서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기덕기 치킨으로 표기해놓은 간판을 보았다.

조린공원 청초당비
조린공원 청초당비

 

조린공원에는 봄기운에 나무가 약간 푸른빛이 돈다. 처음에는 하얼빈공원이었는데 1946년 중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리자오린의 유해를 이곳에 안장하면서 그 이름을 따서 조린공원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매년 1월 5일부터 2월 말까지 하얼빈 빙등제가 바로 이곳에서 개최된다. 초대형 얼음 조각 1500여개가 전시되고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얼음의 조각은 환상적이다. 방송‘미운우리새끼’에서 본 기억이 난다. 안의사가 거사 전에 와서 거닐던 곳이라고 한다.

‘내가 죽거든 시신을 하얼빈 공원에 묻어 두었다가, 조국이 독립하거든 고국으로 옮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공원을 들어서면서 작은 연못이 있고, 원으로 창문 모양을 낸 담장이 있다. 돌에 안중군의사 서거하기 이틀 전에 마지막으로 쓴 휘호가 새겨진 ‘청초당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공원에는 가족들이 와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보인다. 오리 배를 타고 물놀이 하는 곳, 옆으로 연못을 건너는 멋을 낸 다리며 여러 계단위의 멋진 정자가 나무와 멋지게 잘 어우러져 있다. 시간을 조금 보내고 5분정도 걸어서 러시아거리(중앙대가)로 향했다. 바닥에 작은 돌을 일일이 박아 넣어 깔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너무도 많은 공력이 들어간 수고로움에 놀랐다.

러시아풍의 건물에 여러 가지 상점이 있고, 보행자 전용 도로를 따라 가다가 계단을 내려가니 유럽풍으로 꾸며진 지하도에서 군대 행진곡 같은 음악이 계속해서 들리고 그곳을 빠져나오니 광장이 펼쳐지고 ‘하얼빈시인민방홍승리기념탑’ 뒤로 송화강이 흐른다. 물도 많고 바람이 아주 세다. 되돌아오면서 주민들이 거리 공연 하는 것을 보았다.

중앙대가
중앙대가

 

중앙대가는 독일에서 유대인들이 나치로부터 몸을 피해 하얼빈으로 왔는데 이곳이 유태인 타운을 만들어 살다가 2차대전 후 유대인은 되돌아가고 러시아인이 들어오게 되면서 러시아거리가 되었다.

송화강변 하얼빈시인민방홍승리기념탑
송화강변 하얼빈시인민방홍승리기념탑

 

소설가 이효석이 중앙대가에 위치한 ‘모데른 호텔’에 묵었고 하얼빈을 배경으로 ‘하얼빈’이라는 단편소설을 썼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미리 알고 갔으면 그곳을 찾아보고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할빈공대에서 중국미사일과 인공위성 기술을 발전시켰는데 이곳에 한국학생이 99명이 있어 한국학생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따로 있다고 한다. 이곳은 겨울에 석탄을 때서 미세먼지가 많아 비행기가 뜨지 못하기도 한다.

윤동주생가는 올해부터 못 보게 되었다.
목단강을 향해 가는 도중 상지휴게소에 들렀는데 마트에서 진열된 사과가 아주 쭈글쭈글한 것이 있다. 방안을 보니 우리나라 60년대에 볼 수 있었을 것 같은 수영복들이 걸려있다. 그야말로 시간여행이다. 휴게소 이름은 김일성부대 조상지라는 독립운동가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4시간을 달려 목단강의 해림시의 호텔에 도착했다. 배추모양의 조각이 호텔마다 있는데 배추는 부자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호텔이 아주 시골에 위치해서 밤에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만주지역 3광 정책- 독립운동가들을 모조리 빼앗고, 죽이고, 불사른다. 뿌리까지 뽑아 버린다. 무명열사가 많은 곳이 만주지역이다. 흙 한 점, 모래한 점에 그들의 얼이 맺혀있다. 백야 김좌진장군은 처음에는 해림에 있다가 적들을 피해서 산시진으로 들어가 정미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하였다. 장군에게는 호위원들이 있어 적의 접근이 어려웠는데 박상실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 측근으로 들어와 정미소 안에서 백야를 저격한다.

그곳이 백야의 순국 장소이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선열들의 얼이 맺힌 곳을 다닌다. ‘마음을 편히 비우자. 사람 마음이 바람처럼 가볍다’. 만주의 벼농사는 우리민족이 퍼트린 것이다. 우리는 만주에서 북간도 서간도를 다 보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 강, 섬인데 강 사이는 공동인데 섬은 주인이 있다.

두만강 길이 554km 섬이 67개중 북한 땅이 59개, 중국 것이 8개, 압록강에 큰 섬 94개중 북한이 81개, 중국이 13개소유하고 그 중에서 위화도가 가장 큰 섬이다. 두만강 이북은 북간도, 압록강 이북은 서간도이다. 할빈의 나무 밑둥의 흰 칠은 도로표시이고 병충해 방지이기도 하다.

중국은 토지는 국가의 것이고 토지사용권(집문서, 토지허가 사용증)이 중요하다.
주변에 인가가 없는 곳에서 묵게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