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건 희망광주네트워크고문 겸 새세상연구소이사장
올해로 4.19혁명 50주년을 맞게 된다. 자유당정권 이승만대통령은 민생파탄과 동족대결의 실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제왕적 종신권력만 추구했다.

일반민주주의 절차와 규범을 우습게 만든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을 밀어붙여 삼선 대통령 길을 틔고 강력한 야당후보  민주당 해공 신익희(경기광주출신)와 맞서게 되었다.

해공이 선거 유세중 급서로 유명을 달리하여 대통령후보 단일화에 사실상 양보했던  진보당 죽산 조봉암(경기강화출신)이 대결하여 놀라운 득표를 하였다.

투표지 백장 묶음 앞뒤 이승만 표 외에 알갱이 표가 죽산 표였고 전국 여러 지역에서 우세 득표를 할 정도로 사실상 이승만 패배였다.

이승만은 끊임없이 북진통일 승공통일을 외우고 평화통일을 주창하던 조봉암을 법살 했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는 이른바 3인조 5인조 강제 공개 부정투표로 드디어 남도 항구 마산에서 3.15의거가 터졌다.

남원에서 유학 온 김주열학생의 시신이 경찰이 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바다에서 인양되는 4월 11일 2차 전 시민 봉기의 불길로 전국에 번져 4월 19일 전 국민 항쟁으로 확산되고  드디어 4월 26일 이승만이 하야했다.

4.19혁명은 친일유산에 걸터앉고 분단냉전에만 매달리던 불의 부정부패 독재정권의 낡은 작폐와 구시대를 청산하는 자주 민주 통일의 새 시대 새가치 새질서가 열리는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현행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공포한다"라고 되어 있다.

4.19혁명으로 처음 시장 도지사 민선 지방자치의 시발이 주어졌다. 지금은 주민자치 풀뿌리민주주의가 지역공동체의 규범이고 질서이고  제도이다.

4.19혁명은 미완의 혁명이라고 일컬어지면서 지금도 계속된다고 한다. 4.19혁명을 완수하는 것은  국민 민주시민 지역주민이 주권자의  권리와 의무를 당차게 하는데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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