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는 삼국사기에 한성백제 마지막 왕이었던 개로왕의 아들이거나 형제로 기록되어있는 인물인데 그가 일본으로 건너오기전의 백제수도는 하남위례성 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어서 위례성 주변의 상징적 지명을 음차하여 근 아스카에 명명하였다 하여도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현재 쓰고 있는 일본어가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가 같은 뜻으로 쓰여 지는 상당수의 단어들을 보면 충분히 관련이 있을 수 있는 일일 뿐 아니라, 한반도의 일본 통치시절 그들은 우리의 전통지명을 대부분 한자로 고쳐놓아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혹 고대 도래인들이 지어놓은 지명들이 한반도와 같은 것이 많아 그들이 주장하는 한일 고대사 관계의 차질이 우려되어 그러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는 것은 무리한 억지인가?  차후 한일 공동의 고대도시 지명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 져야 만이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다음 답사지로 발길을 돌린다.

죽내가도에서 차로 10여분 내려와 일행이 도착한 곳은 태자정 내에 있는 대판부입의 근비조박물관(大阪府立近の飛鳥博物館)이다. 이곳은 천황의 무덤들이 너무 많아서 왕가의 계곡이라고도 하는데, 박물관내에는 오사카를 비롯한 근비조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져 있다.

전시실은 크게 3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구역은 치카츠아스카와(國際交流)로서 일본의 고분시대와 아스카(飛鳥)시대(4~7세기)의 사람들은 어떻게 동아시아로부터 다양한 지식과 문화를 흡수 하게 되었을까요? 라는 주제로 중국과 한반도와의 문화교류에 대하여 A~F의 전시부스에 말, 금동제품의 도래, 토기제작의 변화, 횡혈식 석실의 도입, 성덕태자의 고분시대에서 아스카시대로 옮겨지는 과정, 기와의 변천, 불교문화의 개화에 따른 사천왕사의 모형, 고분시대의 종말 등 유물을 세부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전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일본어를 알지 못하여도 이해하는데 상당히 편안함을 주고 있다. 또한 관람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지도를 통한 한반도와의 해상루트를 설명하고 있어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구역은 주로 인덕릉 고분을 중심으로 수혈식 석실 및 횡혈식 석실의 발굴모습과 고분에서 출토된 석관, 그리고 고분을 조성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던 캠프 및 마을의 모습을 모형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어 마치 당시의 시대로 되돌아가 영화에서 볼법한 시뮬레이션의 고대 고분축조현장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3구역은 현대과학과 문화유산이란 주제 하에 무거운 것을 밀어서 운반할 때 사용되던 수레가 전시되어져 있다. 거대한 나무로 조합된 수레는 꼭 콩나물시루의 시루받침처럼 생긴 모양으로 발굴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처리를 하여 진열하여 놓았는데, 고대 고분을 축조할 당시 사용되었던 흔적이 그대로 보여 진다. 거대한 돌들과 흙의 무게에 못이겨 찟기고 파인 흔적들이 고분을 축조하던 사람의 살들이 패이고 상처나 시름하는 것 같아 못내 가슴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엽쪽의 부스에는 6세기의 귀걸이와 7세기의 지붕기와, 4세기의 토제와 청동거울, 5세기의 스에기토기와 6세기의 승마용구 등이 전시되어 있어 상처난 민초들의 애환을 상상하는 것도 잠시일뿐 그 문화를 누렸던 상류계층의 유물이 동시에 보여지고 있어 만감이 교차하게 한다.
또한 3구역에서 특이 할 것은 유물 발굴 현장의 모습을 하이비젼 모니터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데 수중유적의 조사, 지중레이다 탐사, 엑스선촬영 그리고 출토유물 및 현장이 훼손되지 않도록 3D스캔 촬영을 통하여 자료화 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발굴현장과 박물관의 전시실에서 조차 흔히 보지 못하던 모습이어서 고고학과 현장 발굴 보고에 대한 의심을 갖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 현장에 대하여 자료와 영상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그대로 공개를 한다는 것에 실로 놀라움을 갖게 하는 장면이었으며, 일본인들이 얼마나 유물과 유구에 대하여 소중히 다루는지 그 한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그들의 역사의식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마감하는 박물관 시간에 쫓겨서 유물을 세심히 들여다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며 박물관을 나와야 했지만 근비조박물관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히 보여 지고도 남는것 같았다.

관람자의 위치에서 움직여지는 동선을 따라 배치한 부스의 유물진열이 세심함을 엿보게 하며,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고대 무덤의 수수께끼, 즉 그들의 조상들이 한반도에서 도래하여(전시안내판의 문구에는 교묘히 한반도와 같은 문화임을 피하고 있지만) 고대 일본의 정체성을 만들어 놓았던 우수한 문화에 대하여 자랑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근 아스카 시대 당시 한반도에서 도래한사람들은 주로 한성백제에서 건너온 이주민이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묘제는 횡혈식석실고분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묘제가  한곳에 축조되어 있는지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이 박물관이 보여주는 고분 유물의 형식과 규모를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몽촌토성 안에 지어지고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이 일본에 문화를 전파해준 본국 답게 유물들의 배치와 규모, 형식을 갖추어 진열되어 내외국인을 맞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며 다음의 답사지를 향해 문을 나선다.

 분주히 움직여 일행이 도착한 곳은 근비조박물관 지척에 있는 추고천황 능이다. 민가와 논 사이에 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200여m를 올라가자 왼쪽으로 화강암을 깎아 만든 돌계단 의 정면에 능역임을 알리는 도리이가 있고 오른쪽으로 앙증맞게 만든 기와집 모양의 표지판    이 있다. 정면 도리이 사이로 보이는 능의 모습은 차라리 숲이라 부르는 편이 나을 듯 싶다. 인덕능에서 보았던 거대한 숲에 비하면 다소 작아 보이지만 지대가 높아서 일까 해자의 흔적 또한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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