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이 박물관에는 인덕과 응신 등 전방후원분에서 발굴된 유물들 외에도, 이타스케고분에서 출토된 사카이시 문화재보호의 심벌마크인 투구 토용과 모즈(百舌島)에 전해져 내려오는 일본 최고, 최대의 관음보살입상인 백단향(白檀香)불상, 길이3m 무게135kg인 오사카부 지정문화재 게이초 대화승총, 사카이 산업과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카이 전경과, 메이지 시대에 미국등지로 수출되어진 사카이깔개등 수세기동안 사카이 경제를 지탱해 왔던 산업과 문화 직기 등이 전시되어 역사 뿐 아니라 문화전체를 한눈에 보는데 손색이 없다. 또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의 다도 선생이었으나, 그의 미움을 사 1591년 자결을 명받아 할복하게 되는 센노리큐(1522~1591)의 초상화 등도 전시되어 있다.

센노리큐가 아껴 사용했던 다완은 조선의 막사발이라 한다. 또 다른 전시물 중에는 대옹(大甕)을 비롯한 연질토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의 왕릉 이 축조된 시기가 바로 연질토기를 만들  던 사람들에 의해 축조 되었다고 하는데 박물관에 전시된 토기의 타날 흔적 및 문양이 이성산성을 비롯한 우리지역 어디에서고 보여 지는 문양이라 낯설지 않다.

혹 고대 우리 하남의 선조들이 건너가 흙을 빚고 불을 지펴 토기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준 것은 아닌지 유심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게 되었다. 
 
거대한 능, 마치 숲을 연상시키는 인덕릉을 나와 버스에 오른 후,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일본인들이 첫 번째로 세운 국도, 죽내가도를 향하여 달려간다.

우리가 가고 있는 바로 그 죽내가도  아래 백제에서 건너와 근 아스카의 문화를 만들었던 곤지를 볼 수 있다는 설렘  이 앞선다.

일행이 탄 버스는 환영이라도 하듯 비취빛 색체를 띤 하늘을 마주하며 시원스레 포장한 도로 위를 달리는데 마치 예전에 와보기나 한 것처럼 눈앞에 익숙한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정면의 장막처럼 드리워진 산줄기는 마치 잠실에서 감북동으로 오르는 정면에 길게 늘어선 남한산의 줄기와도 너무나 흡사한 모습이다.

가능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써 보지만 객관을 넘어들기 힘든 풍경이다. 얼마 후 일행이 탄 버스는 산줄기 바로 아래 태자정 죽내가도 역사자료관(太子町 竹內街道 歷史資料館)에 도착했다.

죽내가도란 근비조(근 아스카)인 태자정에서 원비조(원아스카)인 명일향촌으로 넘어가는 언덕길을 말한다. 고대 백제인들이 도일하여  바다에서 육지로 거슬러 올라 석천을 넘어 금강산의 지류를 따라 백제문화를 일궈온 지역을 나니와(大阪-오사카)에서 가까운 지역이라 하여 근비조라고 불려졌으며, 후일 산을 넘어 나라분지의 남쪽 끝머리에 일본의 새로운 백제문화를 꽃피웠던 지역을 원비조라 한다.

근비조로 오르는 길은 너무나도 정겹다. 말끔하게 정돈된 주변의 경치가 길가에 줄지어 서있는 대나무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이 소담하게 보인다. 마을 입구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 대나무 길을 따라가면 자그마한 마을의 골목을 지나 자료관이 있다.

휴지하나 없이 너무나도 잘 가꾸어진 동리의 골목길 모습은 정감을 넘어 을씨년스럽기 까지 한데, 그 후미진 곳에 우리로 치면 향토사료관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곳을 누가 찾을까 생각해 보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자료관 하나씩은 다 있다고 하니 그들의 역사의식과 애향심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죽내가도 역사자료관 에는 백제의 성덕태자(574~622) 그림과 돌칼, 아스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죽내가도 조형도 및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 그리고 ‘自難破至京大道’라고 적혀있는 최고의 관도, 심지어 죽내가도를 넘나들던 사람들이 메고 다녔던 옛날의 배낭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 지역의 성덕태자와 관련된 설화를 영상화 하여 보여주고 있어 자료관의 수준을 넘어 지역의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작지만 알찬 자료관이다.

또한 특이하게도 답사일행의 시선을 일제히 멈추게 한 것은 남하내의 승문전(南河內의 繩文展)이라는 자료실내 안내표지판 인데, 이곳으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바라 본 산세가 우리의 감북동과 감이동을 연상하게 하여 실로 놀라웠는데 남하(南河)라는 지명은 하남을 뒤집어 놓은듯하여 익숙하고 그 뒤쪽 산들의 이름 또한 태자정을 중심으로 오른쪽 길게 뻗은 산의 이름은 우리의 금암산과 비슷한 금강산이요, 왼쪽의 볼록 솟은 산의 이름은 우리의 이성산과 비슷한 이상산이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으로 하남의 감북동에서 고골로 이어지는 향교고개처럼 죽내가도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혹 한성백제시기 일본으로 건너간 고대의 백제인들이 하남의 지명들을 음차하여 지어 놓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지만 우연치고는 산세 및 지형이 우리지역과 너무도 닮은 모습이어 또다시 놀라게 한다.

더욱이 이곳 근 아스카의 문화는 일본의 신사에 모셔질 만큼 위대했던 곤지의 통치가 이루어 졌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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